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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

친구의 죽음 소식에서 느낀 삶의 무상함...

 세상 그 어느 누구의 죽음이 안타깝지 않겠습니까만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훨씬 더 많이 남은 젊은 이의 죽음은 그 가족은 물론이고 친구들에게 너무나 큰 슬픔을 줍니다...

 대학입시가 인생의 전부인 줄로만 알았던 열아홉살. 생애 처음으로 시험다운 시험이었던 대학입시에서 낙방을 하고 화려할 것 같았던 스무살을 어두컴컴한 재수학원에서 시작했습니다. S대를 비롯한 명문대를 준비하는 친구들이 있는 반이 아닌, 보통 재수학원은 분위기가 패배의식과 나만 잘되면 된다는 이기심이 짙게 드리워져 있기 때문에 다들 처음에는 서로에게 마음을 열지 않습니다... 갑갑한 재수학원에서 그렇게 하루하루를 보내며 알게 된 친구가 있습니다. 공부는 썩 잘하지 못했지만 유난히 밝고 착한 성격에 제가 갖지 못한 큰 키가 부러워 금세 친해질 수 있었습니다.

 재수를 시작한 지 10개월 남짓 지나서 그 친구와 저는 생애 두 번째 수능시험에서 한 해 전보다는 나은 점수를 받고 각자 대학을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저는 평범한 학교와 평범한 학과에 입학했지만 그 친구는 재수를 한 것이 부모님께 누가 된다며 주간학과가 아닌 야간학과로 들어갔습니다. 거기서 근로장학생을 하며 등록금을 다 자기 힘으로 해결할 정도로 성실하게 살며 특유의 밝은 성격도 잃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수업이 없는 날엔 친구의 학교로 놀러가서 밥도 얻어 먹고 그 캠퍼스도 구경하며 대학생으로서의 1년을 즐겁게 보냈습니다.

 그 후 그 친구가 저보다 6개월정도 먼저 대한민국의 남자라면 누구나 이행해야할 병역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군대를 갔고 편지도 주고 받았습니다. 그렇게 2년 2개월이 지나 건강하게 제대한 후 그 친구는 열심히 돈을 모아 외국어도 배우고 더 넓은 세상을 보고자 2002년 12월에 워킹홀리데이비자로 호주행 비행기에 올랐다고 합니다. 저보다 6개월 빨리 제대했기 때문에 저는 그 친구를 배웅해 주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1년을 예정으로 갔던 그 친구는 몇 년이 지나도록 소식이 없었습니다. 그때는 지금과 달리 휴대폰보다는 주로 삐삐나 집전화로 연락을 했기 때문에 몇년이 지나서는 연락처를 알 수도 없었고 제 생활에 바쁜 나머지 연락할 생각을 하지 못했습니다. 워낙 성격좋고 붙임성이 좋은 친구라서 그냥 막연히 '외국에서 눌러 앉아 잘 살고 있나보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다'하는 생각으로 건강하게 지내고 있겠거니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며칠전부터는 부쩍 연락을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대학생 때 썼던 다이어리를 찾아서 그 친구 집전화번호를 찾아냈습니다. 하지만 바로 전화하지 않고 며칠이 지난 금요일 저녁에 전화를 했습니다. '혹시나 전화번호가 바뀌었으면... 그럼 어쩔 수 없지... 잘 살고 있을거야...'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잠시 후 신호가 가고 남자분이 받으셨는데 아버님이신 것 같았습니다.

"여보세요, 거기가 ○○네 집이 맞습니까?"
"네, 맞습니다만 누구시죠??"
"(휴~ 다행이다) 안녕하세요? 저는 ○○친구 ○○라고 합니다. 혹시 아버님 되십니까?? 학교 다닐 때 친구인데 호주간다고 한 이후로는 도통 연락이 없어서 연락처를 알까 하고 전화드렸습니다."
"................. 소식 못들었나봐요......??"
"네... 하도 연락이 안되서 이렇게 전화를 드렸습니다."
"○○이... 죽었어요... 얼마전에 시체를 찾아서 화장했습니다...."
"네???? 죽었다고요......?? 어쩌다가 그렇게 됐는지요.....??"
"호주에서 뉴질랜드로 배낭여행을 갔다가 거기서 실종되었는데 나중에 알고 봤더니 살해되었더군요..."
"..................아...... 어떻게 그런 일이............"
"..........지난 7일 유골을 찾아와서 8일에 화장을 했습니다...... 살인범은 잡았는데 뉴질랜드 사람이라네요...."
"납골당이나 분묘같은 곳이 있으면 찾아가보고 싶은데... 알려주시겠습니까....?"
"○○형이 갔다 왔으니 형 전화번호를 알려드리리다....."
"네......고맙습니다..... 그리고 정말 죄송합니다......"

 너무도 갑작스러운 친구의 죽음 소식에 놀라 잠시 멍했습니다. 한동안 마음을 정리하고나서 아버님으로부터 알게 된 ○○형의 휴대전화로 연락을 해봤습니다. 형님이 말씀하시길 그 친구의 유골은 화장한 후 납골당이나 분묘는 하지 않고 한줌의 재로 저멀리 뿌렸다고 합니다...

 어려운 환경속에서도 그 누구보다 열심히 살고 밝은 표정을 잃지 않았던 친구인데 그렇게 어처구니 없게 죽었다니 믿어지지 않았습니다. 이 소식을 같이 재수하며 같은 학교에 다녔던 친구에게 말을 하니 그 친구 또한 할 말을 잃었습니다. 그리고 한참 후에 친구 ○○의 죽음에 관한 기사를 찾았다고 말해주었습니다. 저도 그 말을 듣고 인터넷 기사를 찾아보니까 제 친구 ○○이가 분명 맞습니다... 뉴스와 신문 지면상에도 보도되었는데 친구인 제가 그 소식을 몰랐다니... 정말 이렇게 허무할 때가 또 있을까요...
 그 친구는 2003년 9월쯤 뉴질랜드로 배낭여행을 갔다가 행방불명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다 5년이 지난 후인 올해 한 제보자에 의해 단순 실종이 아닌 살인사건임을 알게 되었고 지난 6월에 살해 용의자를 체포했다는 뉴스가 났습니다. 그 후 구체적인 물증확보와 자백 등으로 용의자가 범인이었음이 밝혀졌습니다. 살해범은 뉴질랜드 사람으로 백인우월주의자라고 합니다. 제 친구를 죽이게 된 이유는 어떤 원한이 있었던 것도 아닌... 정말 어처구니 없게도 단지 '동양인'이었기 때문이고 합니다... 그 살해범은 불과 얼마 전이었던 12월 5일에 뉴질랜드 재판장에서 징역 25년형을 선고 받았다고 하는데... 너무나 가벼운 형량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친구가 실종되어 살해된 후 유골이 다시 고국으로 돌아올 5년동안 아무렇지 않게 잘 지내고 있었던 제가 친구로서 얼마나 미안하고... 미안한지 모르겠습니다... 그 친구가 자신의 늦은 귀국을 저에게 알리려고 그랬는지 친구의 유골이 고국으로 돌아왔다고 하는 7일은 바로 제가 그 친구의 연락처를 옛 다이어리의 주소록에서 찾았던 날이었습니다.... 그리고 어제 다이어리에서 찾았던 그 친구의 집전화번호와 형의 휴대폰 번호를 제 휴대폰에 입력하니 끝 4자리가 똑같은 번호의 전화 한 통이 10일에 부재중으로 찍혀있었습니다... 우연의 일치일수도 있고 아무런 관련이 없는 번호일 수도 있지만 지난 달에도 같은 번호로 전화가 몇 번 왔었는데 단 한 번도 받지 못했고 낯선 번호라 연락할 생각도 하지 않았습니다... 친구가 저에게 자신의 마지막 모습만큼은 지켜봐달라고 계속 메시지를 보냈던 것일까요...

 친구의 연락처를 찾았던 날 바로 전화를 했다면 친구가 마지막으로 가는 모습만큼은 볼 수 있었을텐데... 혹시나 부산에서 잘 지내고 있다면 이번 주말에 보려고 연락하는 것을 미루는 바람에 그러지 못했습니다... 친구가 겪은 5년간의 원통함은 물론 그의 마지막 모습까지 지켜봐주지 못했습니다.... 
 
 평소 어디 가서 사기를 당하지나 않을까 걱정이 될 정도로 착하다 못해 정말 순진했었습니다. 사소한 것에도 늘 감사해하며 밝은 모습으로, 법 없이도 살 것 같았던 그 친구는 2003년 당시 스물 여섯의 꽃다운 나이에 타국에서 억울하게 죽임을 당하고 5년 넘게 버려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얼마전 바로 자신이 호주로 떠났던 6년전처럼 추운 겨울날 고국으로 돌아왔습니다. 만약 그 친구의 영혼이 있다면 무슨 말을 했을까요... 아마도 그 친구는 이제 이렇게라도 다시 고국으로 돌아왔으니 괜찮다고 했을겁니다...
 친구의 유골이 고국으로 돌아와서 하루가 지난 후인 8일에 화장되어 한줌의 재로 세상에 뿌려질 때까지 이 세상을 원망하지 않았을 그 친구의 마지막 목소리가 들리는 듯 합니다. "난 그래도 해외여행은 해봤잖아... 허허허...."
 
 "친구야, 또 다른 세상이 있다면 거기서 만큼은 부디 행복하게 잘 지내고 니가 못 다 이룬 꿈을 이루길 바란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만... 그동안 바쁘다는 핑계로 연락이 끊긴 친구나 인연이 있다면 저처럼 미루지 말고 전화해서 목소리만이라도 한 번 들어보시길 바랍니다...